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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애견인들이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취지로 연 퍼포먼스 시위의 장면들을 모아 재구성하여 모 포탈 사이트의 유머 게시판에 올라온 것이다. 정확하게 제작자가 누구인지 알길 없고 다소 과장되고 너무 선정적으로 보일 여지가 많은 부분들만 캡쳐 해 놓았기에 문제가 있는 사진이기는 하지만, 실상 한국에서의 일부 애견인들의 동물보호 의식의 현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만 하다. 저들이 모임 후에 뒤풀이로 돼지고기를 먹었는지 소고기를 먹었는지는 확인할 길 없지만, 일단 불판에 고기가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확실하게 고기류를 먹은것으로 보인다. 물론 개고기 반대하는 사람들 고기 먹을 수 있다. 애견인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개를 먹지 말자고 하는 것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존재를 먹는다니, 끔찍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개고기 문화가 반 인륜적이고 반 문화적 행태로 비췰 수도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평소 개고기를 즐겨 먹는 나에게 있어서 이들의 주장에 무조건 동참하기란 쉽지 않다. 삶의 즐거움의 하나를 빼앗기는 기분도 들거니와, 엄연하게 문명사회에 훌륭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문명인이라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 '난 야만인?' 이라는 심한 자괴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언어폭력을 이들이 행사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진중권 교수와 애견인 협회 회장이 EBS 에서 토론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보면서 화도 나지 않을 정도로 밑도 끝도 없는 감성적 발언밖엔 나오질 않았다(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포털 검색을 이용해 보시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감성적 발언은 방향이 약간만 틀어져도 상대방-불특정 이건 특정이건-에게 엄청난 불쾌감과 모멸감을 줄 수 있다. 이성적 발언이라면야 생각하고 고심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은 수긍하고 인정하여 수정할 수 있다지만, 감정적으로 내 뱉은 막 말은 육두문자와 거의 동급인 말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막가는 식의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고 타인의 모든 의견과 생각을 배격하고 깡그리 무시하는 이들이 하는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물론 이들의 말이 설득력이 떨어져서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거나 더 열심히 먹었다 라는 건 아니지만,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는 그 어떤 정당성도 이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라는 사람이 나와서 감정에 치우쳐 막 생각나는 말만을 남발하는 모습은 그들 모두가 같은 생각과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반증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이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싫었다면 대변인으로 다른 사람을 내 보냈어야 했다. '대표' 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전체를 대표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예의 토론에서 완벽하게 K.O 당한 덕분에 다시는 개고기 반대인들과 찬성인들과의 대담류의 기획은 없을 것 같기에 이들의 지위나 운동의 당위성은 더 이상 힘을 얻을 수 없어 보인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형세가 아닐까 싶다.

어찌 되었든 일단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라는 부분에 대한 논리적 설득은 물 건너갔다. 그와 맞물려 졸지에 악습을 계승(繼承)하고 있는 파렴치한인 내게 약간의 자존감의 회복의 기회도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의 언어폭력 이란 표현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들은 동물을 보호하고 개를 보호하기 위해서 눈에 확 들어오고 공감이 확실하게 되는 단어를 골라 사용했겠지만, 돌려 말 하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네가 이 짓거리 하고 있는거다' 라고 말 하는 것과 진배 없는 것이다. 단지 인간이 인간 보다 못 한 짐승을 먹었다고 인간에게 인간만도 못 한 인간이라는 욕을 먹어야 할 당위성이 인간사에서 가당키나 한 말인가? 만약 '개는 특별하다' 라는 논리를 세운다고 한다면 이는 앞선 논리적 빈약 보다도 더 아둔한 논증을 세우는 것이다.

그럼, 개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고기류를 제공하는 동물들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우리가 주로 먹는 것은 돼지, 소, 닭 정도 되겠다. 이들 중 돼지의 I.Q 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 의 경우엔 가장 높은 진돗개의 경우가 60 정도다. 개는 훈련이 없으면 똥, 오줌도 못 가려 싸지만, 돼지는 자연상태 그대로에서는 똥, 오줌을 다른 장소에서 가려서 보고, 행여나 몸이나 털에 묻을까봐 굉장히 조심스레 용변을 본다. 그리고 용변을 본 후에는 흙으로 덮어 흔적을 없앤다.1 닭의 경우야 워낙에 유명한 머리니 언급하는 것 자체가 개에게 실례되는 일이겠다.

개가 반려 동물 이라며 충성심과 사랑을 들기도 하는데, 애완 돼지의 경우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어 던지기 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요즘엔 TV 에서 소가 주인의 죽음앞에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신기한 일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르신들의 말씀들을 들어보면 농경사회에서는 소가 운다거나 은혜를 갚는 일은 그닥 신기한 일이 아니였다. 가장 가까운 예로,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께서 해 주셨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아버님께서 아직 고향서 농사를 하시던 시절, 키우던 소가 잡혀가던 날 이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새벽부터 '우~우~' 하며 길게 울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더라고 회상하셨다. 또, 모 방송사에서 보도했던 삼년상 치른 소의 이야기는 이미 현대의 전설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여타 과학적 이유들로 설명되는 동물 본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정말로 감성이 있어서 한 것인지는 알 길 없지만, 만약 이들의 행위가 감성적이지 않다 라고 한다면 개도 감성적이지 않는 것이다.

곧, 반려 동물 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개에게만 국한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만이 반려 동물 이라는 발상은 지극히 편협한 사상이며, 개를 사랑하는 마음에 눈이 가려져 다른 동물들의 가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애견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지만 한국 동물 보호의 수준이 이정도 라는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 바로 이에 의거한다. 극단적 애견인들에게는 개만 동물이고 다른 동물은 먹이이기 때문이다.

고통, 통감 이라는 것은 지능 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지능이 높을 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 고통에 대한 공포가 높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있어서의 가장 큰 고통과 두려움이 죽음이 아니던가? 반대로 지능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물고기는 통감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바늘을 꾀어서 입을 뚫어도 빼면 바로 아픔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의 동물 보호 운동가들이 고래 잡이는 반대해도 참치 잡이는 반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가축은 바로 돼지다. 개가 아니라. 그런데 단지 애완용이 아니라 식용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돼지는 먹혀도 된다 라고 한다면, 개도 마찬가지로 식용으로 키워서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소는 평생을 일하고 가죽까지 내어 주고 고기도 내어 준다. 그렇게나 고마운 동물을 단지 대량 생산 된다는 이유만으로 먹어도 된다면 개도 대량생산해서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개를 너무나 많이 먹어서 개의 생태계에서의 개체 말살 위기가 닥쳤다면 모르겠지만, 난 도무지 개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를-다른 가축들과 비교해서- 모르겠다.

개가 특유의 발랄함과 긍정성으로 소아마비 등의 지체아들의 교육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돼지는 엄청난 양의 식량과 인간과 흡사한 세포구조로 여러 인체 실험을 대신 할 귀중한 실험체를 제공 해 준다. 소는 가죽과 노동력에 고기까지 제공한다. 뭐가 어느 부분에서 쓸모 있다 없다 라는 논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자면 끝이 없다. 각각의 쓰임세가 틀리기 때문이다. 거기다 개를 통한 학습법 보다는 돌고래를 통한 학습법이 더 탁월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에, 단지 그것만으로 개의 반려성을 증명하기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돼지, 소의 감성, 지성, 유효성을 두고도 과연 개를 제외한 동물들만이 먹이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말이다. 회식을 즐기며 먹는 I.Q 80 의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가진 생명체를 먹는 사람들이 할 소리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고기를 먹는다고 애견운동 하지 말라고, 자격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단, 그들의 논리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행동에서부터 보여야 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개들은 소중하고 개들은 식용으로 키우면 안 되는데 그들은 식용 돼지를 먹고 식용 소를 먹는다? 이게 무슨 동물 보호 운동인가? 내가 보기엔 단지 '개는 귀여우니까 먹지마' 라고 떼 쓰는 사람들로 밖엔 보이질 않는다. 마치 남한의 인권은 존귀한 것이고 북한의 인권은 김정일에게만 있는 것 이라는 논리와 같은 수준의 엉터리 파시즘으로 밖엔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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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강자이너 일대기(http://www.kangsign.com/354)

귀여움, 사랑스러움 만으로 개가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고,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애완동물 이니까. 하지만 그러한 관점 자체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고, 귀엽다, 사랑 스럽다 라는 것도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외모에 대해서 자신들의 기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만약 그들에게 그러한 지각 능력이 있다면). 단지 인간이 보기에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보호하려고 한다면 그건 '동물 보호' 가 아니라 '취향 보호' 가 옳은 표현이다. 자신의 취향에 따른 취사 선택을 동물 보호 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숨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행위는 지금도 육식을 금하거나 줄여가면서 동물들을 보호하려는 이 땅, 아니 전 세계의 동물 애호가들을 욕되게 하는 행위다. 인간의 생명이 평등 하다는 건 상식이면서, 동물의 생명은 평등하지 않다 라는건 대체 어디서 나오는 논리인가?

난 개고기를 먹지만 개도 무척 좋아한다. 언듯 미친거 아니야 라는 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는데, 내게 있어서 개 란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애완용으로 키우기도, 먹기도한다. 물론 키우던 개를 먹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2 그렇다고 단지 짐승이니 먹는다 라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인이 꿈에 나올까 두려워하는 달팽이를 먹는게 난 구역질이 난다. 몽골인들이 내가 평생에 한 마리 가져보는 것이 소원인, 너무나 좋아하는 말(馬)을 회로도 먹는다는 걸 알았을 때 충격에 입맛이 싹 가시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욕하거나 미개인 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제는 개고기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나오게 된 문화적 상대성 때문이다. 이 논지가 흔하다고해서 간과할 수 없다는 소리는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리라.

동물 보호도 좋고 애견도 좋다. 하지만 이치에 맞고 사리에 맞는 분별력 있는 주장이 있을 때에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동이나 논리엔 책임지지 않으면서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힐난하는 것은 결국 감정싸움밖엔 될 수 없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야 뭔가가 이뤄져도 이뤄지지, 무턱대고 '개고기 먹지마라, 반 문화적, 반 인륜적 행위다' 라고 한다면 개고기 먹는 사람에게 '넌 문화인도 인간도 아니다' 라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쪼록 지금도 동물들을 위해 불철주야 힘쓰고 계신 진정한 애견인들, 동물 보호 협회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 이상의 글은 전체 동물 보호 협회 나 애견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일부 극성적 개고기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것으로, 이에 대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1. 이는 동물들의 본능적 행위라고는 하지만, 개의 경우 새끼가 없을 땐 이런 본능이 발휘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2. 어릴 때 키우던 개가 병으로 죽게 생기자 동네 아저씨가 팔지말고 잡자고 어머니께 언질을 건내서 잡은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식구들에겐 비밀로 하고 개고기를 내어 놓으셨는데, 개고기라면 환장하는 날 비롯해서 다른 식구 그 누구도 그 고기를 입에 대질 않았다. 나중에서야 키우던 개라는 걸 알고 통곡했던 기억이 있다. 훌륭하신 애견인들만이야 하겠냐만, 나도 개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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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eth